아내의 빈자리 ​

1990년대 말 이후, 독정리

가을걷이가 끝난 정미소 마당에 서늘한 갯바람이 몰아쳤다. 대형 연속식 건조기는 쉼 없이 돌아갔다. 3억 부도라는 풍파를 넘기고 정미소가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다.


수채화로 그린 오랜 세월 밥을 짓던 부엌의 빈자리

그러나 공장 뒤편 살림채 안방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평생 남편 뒤를 받치며 흙먼지를 털어내던 아내가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세상을 뜨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였다.

안면도 갯마을에서 처음 살림을 나던 날부터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남편이 거친 바다로 둑을 막으러 나가면, 아내는 얼어붙은 갯벌로 나가 조새를 쥐었다. 손끝이 터져 핏물이 배어 나와도 불평 한 번 없었다.

남양만 간척지로 넘어와서도 고난은 이어졌다. 질척이는 논에 들어가 남편과 나란히 피를 뽑았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녹초가 되어도 늘 남편의 끼니부터 챙기던 사람이었다.

정미소를 맡은 뒤로는 가마솥 앞이 아내의 일터였다. 매캐한 장작 연기를 마시며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솥에 불을 지폈다. 일꾼 수십 명의 밥과 숭늉을 퍼 날랐고, 그 손으로 일곱 남매를 건사했다.

자식들이 자라 제 앞가림을 하고 공장도 기틀을 잡았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릴 때였건만, 아내는 그 곁에 없었다.


안방 문턱에 선 배병희와 아내가 없는 이불 자리

배병희는 일을 마치고 안방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메마른 적막만 덜컥 쏟아졌다. 날마다 남편을 맞던 구수한 된장 냄새도, 온기 도는 목소리도 없었다. 휑한 방 한구석에 아내가 쓰던 낡은 무명 앞치마만 개어 있었다.

앞치마를 쥐어 들자 코끝에 밴 장작 그을음 냄새가 훅 끼쳤다. 배병희는 문지방을 움켜쥔 채 굳어버렸다. 무뚝뚝한 성미 탓에 살아생전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목구멍 안쪽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배병희는 어금니를 악물고 마른침을 삼켰다. 흐느끼는 대신 아내가 쓰던 나무 반짇고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정미소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시설은 갖추었으나 밀려드는 벼를 가려내고 찧어 파는 일은 버거웠다. 낡은 장부와 외상 거래로는 불어나는 유통망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배병희와 맏아들 둘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1999년,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맏아들의 제안을 받아 가업에 합류하기로 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형 앞에서 뜻을 밝혔다. "아버지, 제가 정미소로 내려오겠습니다."

배병희는 작업 장갑을 벗으며 둘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서울서 남부럽잖은 회사 다니던 놈이 여긴 뭣 하러 오느냐."

"아버지와 형님이 피땀으로 세운 일터를 지켜야 합니다. 제가 나가서 수도권 유통망을 제대로 뚫어보겠습니다." 대기업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둘째 아들이 가업에 합류하기로 결단한 순간이었다.

둘째 아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새 거래처를 찾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재동과 영등포의 큰 양곡상 가운데는 독정리 쌀을 거들떠보지 않는 곳도 있었다. "독정리 쌀? 들어본 적도 없소. 외상으로 몇백 포 깔아두고 가쇼. 다 팔리면 그때 돈을 주든가 하지."

터무니없는 후려치기와 외상 요구가 빗발쳤다. 외상값을 떼여 논을 팔아야 했던 기억이 배병희의 뇌리에 시퍼렇게 박혀 있었다. "외상 거래는 단 한 가마도 안 된다. 제값 받지 못하고 헐값에 넘겨서도 안 돼."

둘째 아들은 물러서지 않고 차에 쌀자루를 실었다. 매일 서울과 경기 일대를 돌며 큰 식당과 도매상을 찾았다. 즉석에서 솥을 빌려 밥을 지어 맛을 보여주었다. 당일 도정한 쌀을 직송하되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배병희라는 이름이 주는 우직한 신뢰와 둘째 아들의 발품이 맞물렸다. 마침내 수도권에 새 거래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 무렵, 또 하나의 바람이 불어왔다. 농대를 나와 농협에서 일했던 셋째 아들이 형들의 제안으로 정미소 일에 참여했다. 직장을 그만둔 뒤 집안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활로를 찾던 셋째 아들이었다.

셋째 아들이 정미소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형들 앞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제는 벼를 많이 찧어 파는 양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식생활이 바뀌어 쌀 소비는 줄고 있습니다. 우량 종자를 직접 골라 농가에 보급해야 정미소도 농민도 살아남습니다."

셋째 아들은 밤낮없이 흙과 벼에 매달렸다. 낮에는 들판을 돌며 땅의 성질과 벼의 생육을 살폈고, 밤에는 형광등 아래서 종자학 서적과 씨름했다.

마침내 셋째 아들은 국가 공인 종자기사 자격을 땄다. 이어 관청에 정식 종자업 등록까지 마쳤다.

셋째 아들은 밥맛이 뛰어나지만 쓰러지기 쉬워 꺼리던 고품질 품종에 주목했다. 추청과 고시히카리 같은 우량 볍씨를 구해 와 농민들을 찾아다녔다. "농약과 비료를 줄이고 이 좋은 볍씨를 심으셔야 합니다. 거둔 벼는 우리 정미소에서 시세보다 후하게 쳐서 전량 사들이겠습니다."

늙은 농부들은 손사래를 쳤다. "손은 배로 가는데 수확량이 떨어지면 그 손해는 뉘라서 물어준단 말인가?"

그때 배병희가 농부들의 투박한 손을 덥석 쥐었다. "셋째 말대로 해보시오. 소출이 덜 나와 손해가 나면 그 차액은 내가 정미소 돈으로 온전히 물어드리겠소."

제 논을 팔아서라도 볏값을 치러냈던 배병희였다. 그 한마디에 농민들의 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셋째 아들은 이를 발판 삼아 친환경 영농조합법인의 기틀을 다졌다. 들판 곳곳에 농가들과 손잡은 계약재배의 푸른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가업을 향한 형제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 대리점을 하다 쓴맛을 본 넷째 아들이 내려왔다. 실패에 고개 숙인 아우를 배병희와 맏아들은 말없이 받아들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잡념이 달아난다. 여기서 다시 밑바닥부터 딛고 일어서거라."

넷째 아들은 도정과 가공 공정을 도맡았다. 쌀알의 수분을 철저히 맞추고, 싸라기와 이물질을 말끔히 걸러내며 품질을 다잡았다.

이후 막내아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막내아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대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어냈다. "아버지, 이제는 서울 소비자가 안방에서 인터넷으로 산지 쌀을 시켜 먹는 세상입니다." 막내아들은 스마트스토어를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독정리 쌀을 입점시키며 디지털 판매망을 열어젖혔다.


아버지와 다섯 아들이 장부/종자/유통 메모를 두고 일을 나누는 정미소 사무실

이로써 온 가족의 분업 체계가 빈틈없이 들어맞았다. 맏아들은 현장 총괄과 생산을 책임졌다. 둘째 아들은 수도권 대형 도매망을 뚫었고, 셋째 아들은 우량 종자 선별과 영농조합을 이끌었다. 넷째 아들은 정밀 도정과 가공을 지켰으며, 막내아들은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젊은 판로를 넓혔다. 여기에 농민의 땀방울과 도정 과정을 홈페이지 글로 진솔하게 전하며 직거래 신뢰를 다져낸 큰며느리의 따뜻한 손길까지 보태졌다.

정미소 마당 한복판에 다섯 형제가 나란히 섰다. 배병희는 장성한 아들들의 손을 하나씩 그러쥐었다. 기름때와 흙먼지가 깊게 박인 거친 손들이었다. 배병희는 아들들의 어깨를 툭툭 친 뒤 공장 뒤란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새벽마다 연기를 마시며 불을 지피던 낡은 가마솥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너희 어머니가 평생 이 솥 앞을 지켜 오늘을 만들었다. 사람을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사람처럼 대하지 마라. 쌀 한 톨에 담긴 피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섯 형제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흙 묻은 작업화 앞코 위로 뜨거운 눈물이 툭 떨어졌다. 황혼이 깃드는 독정리 들판 위로 붉은 노을이 번져나갔다. 광활한 갯벌을 메워 일군 논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다섯 형제가 뭉치자 정미소는 거대한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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