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손칼국수

스물다섯 나이에 배병희는 평생의 배필을 맞아 가정을 꾸렸다. 단출하게 시작했지만, 부부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밑천 삼아 억척스레 살림을 일궈 나갔다.
배병희가 거친 갯바람을 맞으며 밭과 바다를 오가는 동안, 아내는 집안 살림을 묵묵히 꾸려갔다. 철마다 드나드는 일꾼들을 위해 새벽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펴 고봉밥을 지었다.
고된 나날 속에서도 아이들은 아내의 품에서 탈 없이 자랐다. 들일을 이끄는 남편과 집안을 지키는 아내가 손발을 맞추자, 위태롭던 살림도 차츰 자리를 잡아 갔다.
배병희는 워낙 무뚝뚝해서 아내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래도 속으로는 늘 고마웠고, 누구보다 아내를 믿었다.
아이들도 부모가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며 자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사리손으로 집안일을 거들었다.
가족의 한 해는 계절을 따라 쉼 없이 돌아갔다. 초여름이면 들판에서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타작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여름에는 비탈밭에 매달려 감자와 고구마를 북돋웠다.
가을에는 황금빛 벼를 거두어들였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차가운 갯벌로 나가 김을 맸다. 사계절 내내 일손을 놓을 틈이 없었고, 식구들은 저마다 제 몫을 해냈다.
아내는 식량을 아끼고 갈무리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장독대에는 황새기(황석어) 액젓을 정성껏 담가 두었다. 담글 때는 냄새가 좀 났지만, 잘 곰삭은 액젓은 밥상에 감칠맛을 더했다.
상처가 나 쉬이 무르는 감자는 워낙 많아서 전통 방식대로 전분을 내어 말려 두었다. 그렇게 모아 둔 감자 전분은 흉년에 대비한 비상식량이자 요긴한 별식거리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는 손수 푸짐한 한과를 빚었다. 찹쌀 반죽을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 조청과 튀밥을 고루 묻혔다.
마을로 통하는 둑방길의 자투리땅조차 묵히지 않고 일구어 콩과 채소를 심었다. 철마다 싱싱한 푸성귀로 알뜰하게 식탁을 채웠다.
배병희도 들일을 마치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논둑 도랑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미꾸라지를 잡아 오곤 했다. 아내는 그 미꾸라지를 가마솥에 푹 고아 뼈를 바르고 칼칼하게 손칼국수를 끓여냈다.
얼큰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넘기고 나면 온 식구와 일꾼들의 하루 피로가 싹 가셨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면 배병희는 수확한 감자와 고구마를 안방 온돌 아랫목에 차곡차곡 쌓았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 얼지 않도록 볏짚을 두툼하게 덮어두었다.
긴긴 겨울밤이면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랫목에서 꺼내온 고구마를 화롯불에 노릇하게 구워 먹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어도, 가족들은 가마솥 밥과 구들 온기로 겨울을 따뜻하게 났다.
아이들은 때때로 아버지를 따라 일터에 나섰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안면도의 한 정미소에서 어린 자녀가 무심코 회전 벨트로 손을 뻗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배병희는 벼락같은 고함과 함께 몸을 던져 아이를 와락 끌어당겼다.
그날 아버지의 서슬 퍼런 외침과, 가슴을 쓸어내리던 거친 숨결을 아이는 평생 잊지 못했다.
평소에는 바위처럼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자식의 몸이라도 상하면 모든 일을 팽개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섬마을에서 어린 자식이 크게 다쳤을 때도 배병희는 아이를 자전거에 태웠다. 읍내 병원을 향해 흙먼지 날리는 길을 필사적으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