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자리

1990년대 후반 · 독정 정미소

아내의 빈자리 ​

수채화로 그린 오랜 세월 밥을 짓던 부엌의 빈자리

정미소는 3억 부도의 풍파를 넘기고, 자녀들이 일터를 나누어 맡으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1990년대 후반, 오랜 세월 함께 가정을 일군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부엌일은 1990년에 시집온 큰며느리가 함께 거들고 있었다.

아내는 평생 손마디가 닳도록 일만 했다. 안면도의 거친 갯바람과 가난을 시작으로, 소금기 어린 남양만 간척지와 정미소가 흔들리던 나날까지 묵묵히 견뎌 왔다.

자식들이 장성해 제 앞가림을 하고 사업도 안정을 찾았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숨을 돌릴 만한 때였다.

그러나 아내는 제대로 된 호강 한번 누려 보지 못했다. 고된 세월 속에 제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었을까. 몹쓸 병을 얻어 황망하게 눈을 감고 말았다.

가난한 청년 배병희에게 시집와 평생 곁을 지켜준 아내였다. 고운 옷 한 벌 변변히 걸치지 못했다. 매캐한 장작 연기 속에서 수많은 밥상을 차려내며 일곱 남매를 반듯하게 길러낸 사람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정미소 마당에서 고된 일과를 마치고 안방 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저며왔다. 사십여 년 동안 늘 구수한 밥 냄새와 온기로 반겨주던 아내가 곁에 없었다.

평소 무뚝뚝한 성미 탓에 끝내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 배병희는 속울음을 삼키며 더욱 일에 매달렸고, 그렇게 조용히 마음을 추슬러 갔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집안에는 오랫동안 적막이 감돌았다. 그렇게 홀로 텅 빈 집을 지키던 배병희는 세월이 흐른 뒤 새로운 반려자를 맞이했다.

새 반려자는 어수선해진 집안 살림을 차분히 돌보았다. 평생 고된 일에 치여 쇠약해진 배병희의 건강을 살피며 끼니마다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그 덕분에 배병희도 아내를 잃은 아픔을 조금씩 달래며 노년의 평온을 되찾아 갔다.

먼저 떠난 아내를 향한 그리움은 가슴 한구석에 묻어 두었다. 곁을 지켜 주는 반려자와 마주 앉아 소박한 일상을 이어 가자, 집안에도 다시 온기가 돌았다.

1983 독정 정미소 · 20화

아내의 빈자리

배병희 자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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