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형제가 뭉쳤다

2000년대 이후 · 독정 정미소

다섯 형제가 뭉쳤다 ​

수채화로 그린 공장 앞에서 다섯 아들과 들녘을 바라보는 아버지

외환위기를 넘긴 뒤 정미소는 본격적으로 커 나가기 시작했다. 장성한 아들들은 저마다 역할을 나누어 맡으며 가업에 힘을 보탰다.

맏아들이 경영 총괄과 도정 현장을 책임졌다. 둘째 아들은 수도권 대형 유통망을 넓혀갔다. 그 가운데 농협에 근무하던 셋째 아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셋째는 아버지가 지켜낸 독정리 농토와 서산 간척지에서 여러 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 흙의 생리를 몸으로 익힌 그는 2000년 정미소에 합류했다.

그는 농가 계약재배를 앞장서 추진하고 친환경 영농조합법인을 세웠다. 덕분에 정미소는 좋은 벼를 꾸준히 들여올 수 있게 되었다.

이어 식자재 유통 대리점을 운영하던 넷째 아들까지 합류하여 정밀 도정과 곡물 가공 공정을 맡았다.

이로써 네 형제가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손발을 맞추게 되었다.

막내아들은 지금 쇼핑몰을 운영하며 라이브커머스로 도시 소비자들에게 독정리 쌀을 알리고, 새 고객과 판로를 넓혀 가고 있다.

아버지는 큰 틀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실무는 아들들에게 믿고 맡겼다. 우애 깊은 형제들이 힘을 모으자 정미소는 튼튼한 향토 기업으로 자랐다.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정미소의 살림을 꾸리는 방식도 현대화되었다. 손으로 쓰던 장부 대신 전산 프로그램을 발 빠르게 들였다. 수천 농가의 수매 내역과 입출고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자 셈도 한결 투명해졌다.

2002년에는 직거래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도정 과정과 농민들의 생산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전국 어디서든 안방에서 쌀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중간 유통 단계가 줄어든 만큼 농가에는 제값을 쳐주고, 소비자에게는 갓 찧은 쌀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2004년 농림부 주최 전국농업인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농림부 장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전국농업인 정보화 촉진대회에서 최우수상(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수채화로 그린 공장 일을 마친 뒤 책을 펴고 공부하는 맏아들

정미소가 체계를 갖추어 가자 맏아들은 청년 시절 접어두었던 배움의 길을 다시 걸었다. 가족들의 격려 속에 마흔다섯의 나이로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정미소 현장을 챙기고 밤에는 학업에 힘쓰며 농업 이론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상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배병희는 맏아들의 졸업과 수상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1983 독정 정미소 · 21화

다섯 형제가 뭉쳤다

배병희 자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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