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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여섯 가구가 따라나선 길
내 논을 파는 한이 있어도
9화 여섯 가구가 따라나선 길
1977년 · 안면도에서 남양만으로
1970년대 중반, 안면도에도 변화가 밀려왔다.
섬 곳곳에 큰 기업 목장이 들어서며 논밭과 야산이 팔려 나갔다.
바다를 막는 간척 이야기도 오갔다.
김 양식의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배병희가 섬에서 일군 것도 적지 않았다.
바닷가 갯땅을 막아 손수 논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농지는 3천 평가량이었다.
겨울이면 사람을 써서 김을 떴고, 가을이면 탈곡팀을 이끌고 섬 들판을 돌았다.
그 무렵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에서 농지를 분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새로 생긴 들판이었다.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어 본 그에게 간척지는 낯선 말이 아니었다.
섬의 3천 평과는 견줄 수 없이 너른 들이었다.
그런 들에서라면 기계로 농사를 크게 지을 수 있었다.
배병희는 여러 곳을 두고 오래 따져 보았다.
마지막에 고른 곳이 화성이었다.
수원이 가깝고 서울도 멀지 않았다.
아이들 공부를 뒷바라지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결정은 쉽지 않았다.
태어나 마흔두 해를 산 고향이었다.
온 식구가 일궈 온 논밭이 있었고, 소년 시절 홀로 도리깨를 내리치던 마당이 있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김을 기르고 멸치를 건져 올리던 바다도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집안 살림은 그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낯선 땅에서 일이 틀어지면 섬에서 일군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도, 형제들도 그의 뜻을 믿고 밀어주었다.
배병희가 화성으로 간다는 소식에 마을이 술렁였다.
대대로 섬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낯선 간척지로 살림을 옮기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웃 여섯 가구가 하나둘 그를 찾아왔다.
함께 가겠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온 가족의 삶이 흔들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그들은 오래 곁에서 배병희를 지켜본 사람들이었다.
여섯 집은 고향 살림을 정리하고 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이주 행렬에는 뜻밖의 동행도 있었다.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지내던 마을 어르신이었다.
배병희에게도 새 길은 버거웠다.
노모와 아내, 아직 어린 네 남매를 데리고 가야 했다.
수원에 있는 세 아이 뒷바라지도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어르신을 혼자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웃들마저 떠나고 나면 어르신이 끼니는 어찌 잇고 겨울은 어찌 날지 걱정이었다.
“우리랑 같이 가십시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배병희는 어르신의 거친 손을 잡았다.
단출한 세간을 손수 챙겨 식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남양만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어르신은 그의 집에서 한 식구로 지냈다.
훗날 복지시설로 모실 때까지 그랬다.
자식들도 가정을 이룬 뒤까지 어르신을 찾아뵈었다.
1977년 무렵, 고향을 떠나는 날이 밝았다.
이삿짐 트럭에 손때 묻은 살림살이와 농기계를 실었다.
안면도 들판에서 함께 땀 흘리던 10마력 경운기와 탈곡기, 바인더였다.
배병희는 노모의 손을 잡고 어린 네 남매와 어르신을 챙겼다.
함께 길을 나선 여섯 가구도 저마다 짐을 꾸려 새 땅으로 향했다.
트럭이 섬을 벗어나자 식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서글픔도, 낯선 땅에 대한 불안도 왜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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