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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가마솥 손칼국수
내 논을 파는 한이 있어도
5화 가마솥 손칼국수
1960년대 · 안면도 중장리
이십 대 중반, 배병희는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렸다.
시작은 단출했다.
부부는 부지런함 하나를 밑천 삼아 살림을 일궈 나갔다.
배병희는 갯바람을 맞으며 밭과 바다를 오갔다.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들일에도 손을 보탰다.
철마다 드나드는 일꾼들을 위해 새벽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펴 고봉밥을 지었다.
배병희는 워낙 무뚝뚝해서 아내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아내는 집안에 큰일이 닥치면 제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하나둘 늘었다.
부모가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거들었다.
가족의 한 해는 계절을 따라 쉼 없이 돌아갔다.
초여름이면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타작했다.
한여름에는 비탈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돌봤다.
가을에는 벼를 거두었다.
겨울이면 갯벌에서 김을 길렀다.
사철 일손을 놓을 틈이 없었다.
식구들은 저마다 제 몫을 해냈다.
아내는 먹을거리를 아끼고 갈무리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장독대에는 황새기(황석어) 액젓을 담가 두었다.
담글 때는 냄새가 좀 났지만, 잘 곰삭은 액젓은 밥상에 감칠맛을 더했다.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액젓을 사러 찾아오는 상인도 있었다.
감자는 워낙 많이 나서, 상처 나 쉬이 무르는 것은 전통 방식대로 전분을 내어 말려 두었다.
그렇게 모은 감자 전분은 흉년에는 양식이 되고 평소에는 별식거리가 되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는 손수 한과를 빚었다.
찹쌀 반죽을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 조청을 바르고 튀밥을 고루 묻혔다.
마을로 들어오는 둑방길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다.
콩과 채소를 심어 철마다 푸성귀로 밥상을 채웠다.
배병희도 들일을 마치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논둑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오곤 했다.
아내는 미꾸라지를 가마솥에 푹 고아 뼈를 발라내고 칼칼한 손칼국수를 끓였다.
얼큰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넘기고 나면 식구들과 일꾼들의 하루 피로가 풀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배병희는 거둔 감자와 고구마를 맨 뒷방 윗목에 들였다.
싸리대로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얼지 않도록 위에는 짚을 덮었다.
긴 겨울밤이면 식구들이 둘러앉아 고구마를 화롯불에 구워 먹었다.
쪄서도 먹고, 엿을 고아 고구마엿도 만들었다.
가마솥 밥과 구들 온기 속에서 식구들은 겨울을 났다.
아이들은 때때로 아버지를 따라 일터에 나섰다.
안면도의 한 정미소에 따라간 날이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벨트가 신기했던지, 어린 자녀가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배병희가 벼락같이 소리치며 아이를 끌어당겼다.
그날 아버지의 서슬 퍼런 외침과 가슴을 쓸어내리던 거친 숨소리를 아이는 평생 잊지 못했다.
평소에는 바위처럼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자식이 다치기라도 하면 하던 일을 놓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린 자식이 크게 다쳤을 때는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읍내 병원까지 흙먼지 길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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