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으로 건넨 볍씨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나오지 않은 어느 봄날 밤이었다. 못자리에 넣을 볍씨마저 바닥나 애태우던 가난한 이웃이 있었다. 그가 정미소 헛간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볍씨를 퍼 담고 있었다.
헛간 앞을 지나던 배병희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소리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시골 동네에서 도둑으로 몰리면 본인은 물론 식구들까지 고개를 들고 살기 어려웠다. 마을을 떠나야 할 수도 있었다.
그는 헛기침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물러섰다.

이튿날에도 배병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이웃을 대했다. 며칠 뒤, 그는 슬며시 그 이웃에게 일을 청했다.
“정미소에 잔손 가는 일이 많이 밀렸는데, 며칠 와서 일손 좀 보태 주시오.”
일을 마친 이웃에게 그는 품삯으로 볍씨를 내주었다.
병원이나 약국이 멀던 시절이었다. 한밤중에 누가 급체로 배를 움켜쥐거나 손발이 차게 굳어 식은땀을 흘리면 사람들은 정미소로 달려왔다.
들일로 온몸이 쑤시는 날에도 배병희는 싫은 내색 없이 낡은 침통을 챙겼다. 굳은 팔다리를 주무르고 손끝을 따서 체기를 내렸다. 얼굴에 핏기가 돌고 숨이 편안해질 때까지 곁을 지켰다.
비 온 뒤 질척한 농로에서 이웃의 경운기나 트럭이 도랑에 빠져 바퀴만 헛돌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하던 일을 놓고 트랙터를 몰고 갔다. 굵은 쇠줄을 걸어 단숨에 끌어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이웃에게 그는 말했다.
“농사짓다 보면 다 그런 거지요.”
그러고는 흙 묻은 손을 툭툭 털고 돌아섰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는 정미소와 집에도 남보다 앞서 전화를 들여놓았다. 전화는 서울·인천의 거래처와 연락하는 생명선이었다. 배병희는 자녀들에게 전화 예절만큼은 엄하게 가르쳤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얼른 받아라.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트럭을 몰고 신작로를 달리다가도 길가에 동네 어르신이나 이웃이 보이면 저만치서 차를 세웠다. 흙먼지가 날릴세라 시동부터 껐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차창만 내리고 고개만 까딱하는 일은 없었다.
자녀들에게도 사람 대하는 법을 입버릇처럼 일렀다.
“사람을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것처럼 대하지 마라. 인연은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나는 법이다.”
“미운 사람일수록 더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세상 살면서 남에게 원망 살 일은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을 가려 대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제 입맛에 맞는 사람만 찾다 보면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