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만큼은

열여덟 평 독정리 집은 식구들과 가축들로 늘 북적였다. 배병희는 간척지 농사로 쉴 틈이 없는 와중에도 마당 한쪽에 우리를 치고 소와 닭, 토끼를 길렀다.
아내는 갯바람이 부는 낯선 터전에서도 마당 한구석에 꽃밭을 일구었다.
부모는 늘 일에 바빴다. 작은딸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에 빼앗긴 것만 같았다.
딸도 일손을 보탰다. 어머니를 따라 산에 올라 떨어진 솔잎을 긁어모았다. 큰 자루에 꾹꾹 눌러 담아 두면 경운기나 트럭이 실어 날랐다.
마당에 쌓인 솔잎 더미는 세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땔감이 되었다. 도시락으로 누룽지를 싸 간 날도 있었다.
논일도 거들었다. 잡초를 뽑으러 논에 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지고 아팠다. 작은딸과 넷째 아들은 우산을 받쳐 쓰고 논에 나가 새를 쫓기도 했다.
집에서 배병희는 말수가 적고 엄했다. 몸가짐만큼은 늘 단정해야 한다고 여겼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 머리가 조금만 자라면 마당에 앉혀 놓고 손수 깎아 주었다. 가위로 가지런히 다듬은 뒤 머리를 감겨 주었다.
외출하는 날에는 작은딸이 아버지의 짧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정성껏 말려 드렸다.
셋째 아들이 실수로 귀한 선풍기 날개를 부러뜨린 날이었다. 아이는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잔뜩 움츠렸다. 아버지는 한마디만 했다.
“고치면 된다.”
넷째 아들이 심하게 앓아누웠을 때는 하던 일을 그대로 놓고 차에 태워 읍내 병원으로 달렸다. 밤늦도록 곁을 지키며 치료를 받게 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배병희는 험한 산길과 가난 탓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 아쉬움은 평생 남았다.
자식들만큼은 마음껏 배우게 하고 싶었다.
배병희는 수원에서 공부하는 세 자식의 거처를 학교 가까이에 마련해 주었다. 힘들게 땀 흘려 번 돈이었지만 학비와 책값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에게는 인색했다. 학비와 방값을 대느라 옷 한 벌도 허투루 사지 않았다.

수원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에 다니던 큰딸은 주말이면 집에 다녀갔다. 돌아갈 때마다 아내는 깍두기를 새지 않게 꽁꽁 싸매 들려 보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나가는 딸의 등 뒤로 늘 당부가 따라붙었다.
“덜컹거리는 길에서 다칠라, 차를 타면 꼭 가운데 자리에 앉거라. 그리고 차비는 주머니 깊숙이 잘 넣어 두고.”
깍두기 통을 품에 안고 길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고, 배병희는 다시 흙투성이 들판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