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떼를 쫓는 청년 ​

수채화로 그린 낭장망을 걷어 올려 은빛 멸치를 거두는 배병희와 동료들

1972년 무렵, 그는 안면도의 유지와 손을 잡았다. 뜻을 같이한 마을 사람 두세 명도 함께 바다로 나섰다.

먼바다로 나가는 고깃배에는 큰 밑천이 들었다. 그 대신 서해 갯가의 거센 물살과 지형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이 고른 것은 안면도 갯가에서 흔히 건간망이라 부르던 낭장망(浪長網)이었다.

낭장망은 조류가 드나드는 얕은 바다 길목에 치는 그물이었다. 참나무 말뚝을 단단히 박고 물살 방향으로 긴 자루그물을 매달았다. 밀물을 타고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빠른 여울에 휩쓸려 그물 끝자루로 모여들었다.

바닷일은 물때가 곧 시계였다. 썰물이 끝날 무렵이면 밤낮없이 물길을 건너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그물을 걷어 올렸다.

그물을 들어 올리면 은빛 멸치 떼가 퍼덕이며 쏟아져 나왔다. 투명한 실치와 꼴뚜기, 갖가지 물고기도 그물 가득 걸려들었다.


수채화로 그린 갯가 자갈밭의 가마솥에서 멸치를 삶는 배병희

멸치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금세 숨이 끊어지고 살이 물러졌다. 신선도가 생명이었다. 배병희는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자갈밭에 커다란 무쇠 가마솥을 걸었다.

장작불을 지피고 바닷물을 가마솥 가득 부어 펄펄 끓였다. 갓 잡은 멸치는 소쿠리째 끓는 바닷물에 들어갔다.

바닷물의 간이 멸치 살에 알맞게 뱄다. 따로 소금을 치지 않아도 비리지 않고 달착지근했다. 살이 무르지 않도록 한소끔만 데쳐 건지는 것이 그의 요령이었다.

김이 오르는 멸치를 자갈밭에 넓게 편 그물망 위에 고루 널었다.

햇볕을 머금은 몽돌이 아래에서 열기를 뿜고, 위로는 바닷바람이 스쳐 갔다. 멸치는 비린내 없이 맑은 은빛으로 바삭하게 말라 갔다.

함께 잡힌 실치는 삶지 않고 따로 손을 보았다. 겨울에 김을 뜨던 네모난 나무틀을 가져와 투명한 실치를 얇고 가지런히 펴 얹고 갯바람에 말렸다. 바삭하고 고소한 뱅어포가 되었다.

잘 마른 멸치와 뱅어포는 빛깔이 곱고 맛이 달아 찾는 이가 많았다.

한 해 남짓 이어진 낭장망 일은 쏠쏠한 벌이가 되었다. 일을 마치면 배병희는 안면도 유지와 동료들에게 일한 몫대로 삯을 나누었다.

그물에 함께 걸려 올라온 숭어나 우럭, 망둑어 같은 싱싱한 잡어는 집으로 넉넉히 챙겨 왔다.

소금기 밴 얼굴로 돌아온 저녁이면 냄비 가득 무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잡어 매운탕을 칼칼하게 끓였다. 짭조름한 생선 조림까지 오르면 식구들의 하루 고단함이 풀렸다.


배병희의 아버지는 소금을 굽는 일에 뛰어들었다. 바닷가에 무쇠솥과 철판을 걸고 바닷물을 끓여 졸이는 전통 자염(煮鹽) 방식이었다.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며칠 밤낮으로 불을 지펴야 했다. 아버지는 땀과 그을음투성이가 된 얼굴로 아궁이에 연료를 밀어 넣었다. 배병희 역시 불 곁에서 일손을 보탰다.

그러나 바닷물을 졸이는 데 연료비와 운반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소금을 거두어 팔아도 연료비조차 건지지 못했고, 결국 큰 빚만 남았다.

일을 접고 허탈해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배병희는 오래 잊지 못했다.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셈이 맞지 않으면 헛수고라는 것을 그는 그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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