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자리 숫자 ​

수채화로 그린 형이 막내 배병희의 손을 쥐고 군번을 일러주는 순간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외딴 섬마을 안면도도 전쟁을 비켜 가지 못했다. 집안의 기둥이던 두 형이 징집 영장을 받고 전선으로 떠났다.

막내 배병희는 열다섯 살이었다. 형들이 떠난 뒤로 늙은 부모와 누나들의 생계를 떠맡았다. 하루아침에 소년 가장이 되었다.

총소리는 바다 건너 먼 데서 났다. 굶주림은 바로 문 앞에 와 있었다. 초여름이 되자 들판에 보리가 누렇게 익었다.

탈곡기는커녕 소달구지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보리를 베어 들이고 터는 일은 오롯이 열다섯 소년의 몫이었다. 배병희는 이를 악물고 마당에 멍석을 폈다.


수채화로 그린 마당에서 홀로 도리깨로 보리를 타작하는 소년

새벽이슬이 걷히기 무섭게 보릿단을 지게로 져 날랐다. 마당에 널어놓고 홀로 도리깨를 쥐었다. 뙤약볕 아래서 도리깨가 허공을 갈랐다.

타작 소리가 울릴 때마다 흙먼지와 보리 까끄라기가 흩날렸다. 땀에 젖은 목덜미와 등줄기로 까끄라기가 파고들었다. 살갗이 벌겋게 짓무르고 불에 덴 듯 쓰라렸다.

손바닥은 물집이 터지고 굳은살이 뜯겨 피와 진물이 배어 나왔다. 종일 도리깨 자루를 쥐었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굳어 잘 펴지지 않았다. 밤이면 온몸이 쑤셔 숟가락조차 들기 어려웠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가 도리깨를 놓으면 식구들의 끼니가 끊겼다. 홀로 휘두르고 홀로 쓸어 담는 보리타작은 한 달이나 이어졌다.

소년은 형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포화가 빗발친다는 소문이 섬마을까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형들의 전사 소식이라도 날아들까 두려웠다.

‘형님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형들이 입대하던 날, 바로 위 형은 막내의 손을 꼭 쥐고 자신의 군번을 일러 주었다. 열두 자리에 이르는 긴 숫자였다.

소년은 도리깨를 내리칠 때마다 그 열두 자리 숫자를 입속으로 외웠다. 밤이면 욱신거리는 손을 모아 쥐고 형들의 무사를 빌며 외우고 또 외웠다.

그 번호는 전쟁터 어딘가에 형이 살아 있다는 하나뿐인 징표였다.

예순 해, 일흔 해가 흐른 노년에도 그는 바로 위 형의 군번만큼은 또렷하게 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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