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벼, 커지는 정미소

독정리에는 1만 2천 평만 남았지만, 배병희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정미소를 꾸리며 줄어든 논을 다시 늘리려고 충남 서산의 간척 농지 약 3만 평을 새로 사들였다.
오가는 길은 멀어졌지만, 손수 농사짓는 그 땅은 정미소 살림을 받쳐 주었다.
농민들의 신뢰가 쌓이면서 1990년대 중후반 독정 정미소에는 벼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장안면과 우정면, 남양만 일대 들녘에서 수확한 벼였다.
창고가 턱없이 부족했다. 넓은 마당과 인근 밭자락까지 볏가마니를 산더미처럼 쌓아두어야 할 지경이었다.
이 시기 농촌에는 벼를 베면서 탈곡까지 한 번에 끝내는 ‘콤바인’이 널리 보급되었다. 수확 기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그러자 가을 한철에 채 마르지 않은 ‘물벼(생벼)’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물벼는 거두자마자 말리지 않으면 자체 열과 습기 때문에 뜨고 변질되기 일쑤였다.
배병희와 자녀들은 서둘러 대용량 연속식 곡물 건조기를 들였다. 건조된 곡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저온·상온 사일로와 저장 창고도 크게 늘렸다.
찧는 양이 늘면서 먼지도 심해지자 대형 집진 설비를 갖추었다. 흡입 팬과 필터가 먼지를 빨아들여 일꾼들의 작업 환경도 한결 쾌적해졌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결정이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훌쩍 자란 자녀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맏아들은 청년 시절 학업마저 미룬 채 일찍부터 도정 현장에 뛰어들었다. 시설 관리와 쌀 생산을 총괄하며 아버지를 든든히 보좌했다.
거래량이 크게 늘자 판로를 넓힐 사람이 절실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 둘째 아들이 합류했다. 레미콘 회사에서 영업을 익힌 그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대형 도매시장과 양곡 유통망을 발로 뛰며 뚫었다.
맏이가 품질과 생산 라인을 책임지고 둘째가 대외 영업을 힘차게 밀어붙였다. 정미소의 거래 규모는 나날이 커졌다.
독정 정미소는 그렇게 부도의 상처를 털어내고 번듯한 기업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