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쇠갈고리

1930년대 · 안면도 중장리

어머니의 쇠갈고리 ​

수채화로 그린 갯벌에서 조새로 굴을 까는 어머니

1936년, 배병희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남쪽 중장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말, 전쟁 물자 공출로 전국이 극심한 식량 부족과 빈곤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외딴 섬마을 안면도도 다르지 않았다.

안면도 중장리는 거센 갯바람이 붉은 황토 언덕과 소나무 숲을 스쳐 지나가는 거친 땅이었다. 비옥한 평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파른 비탈을 일군 황토밭과 비가 내려야 물이 고이는 천수답이 삶의 터전이었다.

봄에는 가뭄이, 여름에는 태풍이 잦아 곡식 가꾸는 일이 늘 고됐다.

하지만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갯벌이라는 또 다른 생활 터전이 있었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드러나는 서해 갯벌은 가족들의 소중한 생계 수단이었다.

배병희의 가족은 황토밭에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다. 물때가 맞으면 광주리를 들고 갯벌로 나가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손때 묻은 ‘조새’를 챙겨 들고 바다로 나섰다. 조새는 나무 손잡이에 뾰족한 쇠날과 갈고리가 달린 서해안 고유의 어구였다. 갯바위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자연산 굴을 쪼개고 알을 발라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다.

흔한 호미로는 굴을 온전히 깔 수 없었다. 조새는 어머니의 분신과도 같았다.

살을 에는 겨울철 북서풍이 몰아쳐도 어머니는 물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차가운 개흙을 건너 바위틈에 쪼그려 앉아, 얼어붙은 손으로 쉼 없이 조새질을 했다.

거센 바닷바람과 소금기에 어머니의 손등은 늘 붉게 트고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그렇게 광주리 가득 캐 올린 자연산 굴과 개흙 속에서 찾아낸 낙지는 대식구의 끼니를 잇는 양식이었다.

또 십 리 길을 걸어 장터에 내다 팔면 쌀과 소금, 생활에 필요한 푼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귀한 밑천이었다. 어린 배병희는 어머니의 닳고 닳은 조새에서 가족을 먹여 살린 수고와 강인함을 보았다.


수채화로 그린 황토 비탈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거두는 안면도의 식구들

비탈밭 작물과 갯벌에서 거둔 해산물 덕분에 대식구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나, 어린 배병희는 흙과 바다를 터전 삼아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는 날마다 어머니의 시린 손끝과 땀 흘리는 아버지와 형들의 모습을 보며 정직하게 일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집안에 일손이 늘 모자라 그도 일찍부터 일을 거들었다.

소년은 시키지 않아도 쇠스랑을 챙겨 들고 밭으로 나갔다. 제 몸집만 한 지게를 지고 가파른 비탈길을 묵묵히 오르내렸다.

1936 안면도 · 1화

어머니의 쇠갈고리

배병희 자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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