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30화
아버지의 밥상 (에필로그)
현재, 화성 남양황라 들녘과 독정 RPC
늦가을 해 질 무렵, 화성 남양황라 들녘이 붉게 물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 위로 서해 갯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누렇게 여문 벼 이삭들이 바람결을 타고 끝없이 누웠다 일어섰다.
팔순을 넘긴 배병희는 독정 미곡종합처리장 마당에 우뚝 섰다.
등 뒤로는 거대한 곡물 저장 사일로와 저온 창고가 웅장하게 들어서 있었다.
공장 창문 너머로는 도정기와 선별기가 돌아가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배병희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는 옹이 같은 굳은살이 박여 거북 등처럼 거칠게 텄다.
굵어진 손마디 틈새마다 쇳가루와 흙먼지가 지워지지 않는 먹물처럼 깊게 배어 있었다.
한평생 살아온 내력이 그 두 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면도 갯벌에서 열서너 살 어린 나이에 제 몸보다 큰 지게를 지던 시절이 있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뻘밭으로 나가 돌을 나르고 흙을 메워 직접 바다 둑을 막았다.
밀려드는 바닷물을 맨몸으로 막아내며 마침내 3천 평 논을 얻어낸 청년이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건너온 이곳 남양만은 또 어떠했던가.
새로 막은 간척지는 소금기가 하얗게 버석거리는 불모지였다.
풀 한 포기 제대로 돋지 못하는 짠 땅을 바라보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배병희는 주저앉지 않았다.
밤낮없이 고랑을 파고 암거를 묻어 소금물을 씻어내며 6만 평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돌아보면 오직 흙과 벼만 바라보고 걸어온 한평생이었다.
땅에서 벼를 거두는 일은 하루도 수월한 날이 없었다.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졌고, 폭우가 쏟아지면 야적장에 쌓아둔 벼가 젖을까 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가장 모진 고비는 하늘이 아니라 사람 쪽에서 닥쳐왔다.
믿었던 거래처의 부도로 정미소가 파산 위기에 몰렸던 그 가을이었다.
배병희는 남은 논 일부를 헐값에 넘겨 농민들의 볏값을 한 푼도 깎지 않고 치렀다.
그 험난한 세월을 함께 버텨온 아내는 너무 일찍 곁을 떠났다.
매캐한 장작 연기를 마셔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무쇠 가마솥에 밥을 짓고 일꾼들을 거두던 사람이었다.
평생 고생만 하던 아내가 먼저 눈을 감았을 때, 배병희는 적막한 방 안에서 장롱 모서리를 쥐고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빈자리를 채운 것은 훌쩍 자란 자식들이었다.
다섯 아들이 정미소 일을 나누어 맡으며 가업의 뼈대를 다시 세웠다.
마침내 500여 농가, 300만 평 들판을 아우르는 계약재배의 결실을 맺었다.
그동안 자식들은 아버지의 환갑과 칠순을 맞을 때마다 잔치를 크게 열어드리고 싶었다.
친지들과 동네 사람들을 모아 평생의 노고를 위로하려 했다.
"아버지, 이제 남부럽지 않게 자리 잡았으니 동네 어르신들 다 모시고 큰 잔치 한번 여시지요."
맏아들이 찾아와 정중히 권했을 때, 배병희는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산 사람이 번잡스럽게 무슨 잔치냐?"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아낌없이 상을 차려주고, 남의 일이라면 제 일처럼 달려가던 아버지였다.
명절에 찾아온 자식의 친구들에게도 말없이 두둑한 여비를 쥐여주어 보냈다.
봄밤 헛간에서 몰래 볍씨를 퍼 담던 가난한 이웃을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주었고, 도랑에 빠진 이웃의 경운기를 앞장서서 끌어내 주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위한 자리에는 한없이 박했다.
배병희는 환갑에 이어 칠순 상마저 끝내 완강하게 물렸다.
남 대접하는 데는 아낌이 없었어도, 제 입으로 들어갈 밥상에는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조차 분에 넘친다고 여겼다.
몇 해 전 가을 수매가 한창이던 어느 늦은 밤이었다.
자식은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온몸에 쌀겨 먼지를 뒤집어쓴 채 녹초가 된 몸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아버지가 홀로 앉아 있었다.
작은 밥상 위에는 뚜껑을 덮어둔 접시 하나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저녁도 들지 않은 채 그 늦은 시간까지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접시 덮개를 열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툼한 돼지고기 수육이 놓여 있었다.
알맞게 익은 김치 한 보시기와 감칠맛 나는 새우젓 종지가 곁들여져 있었다.
식을세라 대접을 덮고 아랫목 이불 속에 겹겹이 묻어두었던 고기였다.
"아버지, 왜 저녁도 안 드시고 이러고 계셨어요?"
목이 메어 묻는 자식에게 배병희는 긴말을 보태지 않았다.
투박한 손으로 젓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자식의 손에 꼭 쥐여주었을 뿐이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거친 손마디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온기가 자식의 굳은 손바닥을 데웠다.
배병희는 밥상머리에 앉아 자식이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넘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했다 못했다 하는 말 한마디 없었으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눈빛에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
밤낮없이 일터를 지키는 자식의 빈속을 덥혀주는 고깃점 하나.
평생 흙탕물에 손을 담그며 살아온 아버지가 자식에게 차려준 따뜻한 상이었다.
남에게는 한없이 베풀면서도 자신에게는 서슬 퍼렇게 엄격했던 사람.
평생 묵묵히 감당해 낸 그 고단한 일생이야말로, 가족과 세상을 배불리 먹여 살린 가장 크고 따뜻한 밥상이었다.
동이 트자 남양황라 들녘 위로 맑은 가을 햇살이 비쳐 들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타고 볏잎 스치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판을 메웠다.
정미소 마당에서는 아들들이 콤바인과 트럭의 시동을 걸며 힘차게 하루를 열고 있었다.
배병희는 논두렁길에 멈추어 서서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 이삭 하나를 거친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얹었다.
알알이 옹골차게 찬 낟알이 손바닥을 묵직하게 채웠다.
펄럭이는 작업복 자락을 여미며, 배병희는 지평선 너머를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식들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아버지의 당부였다.
"사람을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것처럼 대하지 마라."
서늘한 바람이 다시 한번 들판을 쓸고 지나갔다.
익어가는 벼가 눈부신 햇살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남양만의 너른 들판을 가득 채워갔다.
0:00
7:31
10
10
1.0×
재생 속도
타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