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28화
아내의 빈자리
1990년대 말 이후, 독정리
가을걷이가 끝난 정미소 마당에 서늘한 갯바람이 몰아쳤다.
대형 연속식 건조기는 쉼 없이 돌아갔다.
3억 부도라는 풍파를 넘기고 정미소가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공장 뒤편 살림채 안방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평생 남편 뒤를 받치며 흙먼지를 털어내던 아내가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세상을 뜨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였다.
안면도 갯마을에서 처음 살림을 나던 날부터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남편이 거친 바다로 둑을 막으러 나가면, 아내는 얼어붙은 갯벌로 나가 조새를 쥐었다.
손끝이 터져 핏물이 배어 나와도 불평 한 번 없었다.
남양만 간척지로 넘어와서도 고난은 이어졌다.
질척이는 논에 들어가 남편과 나란히 피를 뽑았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녹초가 되어도 늘 남편의 끼니부터 챙기던 사람이었다.
정미소를 맡은 뒤로는 가마솥 앞이 아내의 일터였다.
매캐한 장작 연기를 마시며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솥에 불을 지폈다.
일꾼 수십 명의 밥과 숭늉을 퍼 날랐고, 그 손으로 일곱 남매를 건사했다.
자식들이 자라 제 앞가림을 하고 공장도 기틀을 잡았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릴 때였건만, 아내는 그 곁에 없었다.
배병희는 일을 마치고 안방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메마른 적막만 덜컥 쏟아졌다.
날마다 남편을 맞던 구수한 된장 냄새도, 온기 도는 목소리도 없었다.
휑한 방 한구석에 아내가 쓰던 낡은 무명 앞치마만 개어 있었다.
정미소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시설은 갖추었으나 밀려드는 벼를 가려내고 찧어 파는 일은 버거웠다.
낡은 장부와 외상 거래로는 불어나는 유통망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배병희와 맏아들 둘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1999년, 서울 대기업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맏아들의 제안을 받아 가업에 합류하기로 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형 앞에서 뜻을 밝혔다.
"아버지, 제가 정미소로 내려오겠습니다."
배병희는 작업 장갑을 벗으며 둘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서울서 남부럽잖은 회사 다니던 놈이 여긴 뭣 하러 오느냐."
"제가 나가서 수도권 유통망을 제대로 뚫어보겠습니다."
대기업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둘째 아들이 가업에 합류하기로 결단한 순간이었다.
둘째 아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새 거래처를 찾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재동과 영등포의 큰 양곡상 가운데는 독정리 쌀을 거들떠보지 않는 곳도 있었다.
"독정리 쌀?
들어본 적도 없소.
외상으로 몇백 포 깔아두고 가쇼.
다 팔리면 그때 돈을 주든가 하지."
터무니없는 후려치기와 외상 요구가 빗발쳤다.
둘째 아들은 물러서지 않고 차에 쌀자루를 실었다.
매일 서울과 경기 일대를 돌며 큰 식당과 도매상을 찾았다.
즉석에서 솥을 빌려 밥을 지어 맛을 보여주었다.
당일 도정한 쌀을 직송하되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어느새 수도권에 새 거래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 무렵, 또 하나의 바람이 불어왔다.
농대를 나와 농협에서 일했던 셋째 아들이 형들의 제안으로 정미소 일에 참여했다.
직장을 그만둔 뒤 집안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활로를 찾던 셋째 아들이었다.
셋째 아들은 밤낮없이 흙과 벼에 매달렸다.
농대에서 배운 작물학과 농협에서 쌓은 지식이 있었지만, 간척지의 거친 들판은 책 속 이론만으로 다스려지지 않았다.
밥맛 좋은 명품 쌀의 진정한 시작은 최신 도정 기계 이전에 논바닥의 흙과 건강한 볍씨에 있다는 것이 그의 굳은 믿음이었다.
그는 새벽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장화를 신고 논두렁으로 나섰다.
소금기가 남아 있는 간척지 토양의 성질과 배수를 일일이 점검하고, 벼 포기를 조심스레 뿌리째 뽑아 올려 흙을 털어내며 뿌리의 발달 상태와 새끼치기(분얼)의 형세를 꼼꼼히 살폈다.
밤이 깊어 들판이 고요해지면, 흙 묻은 작업복을 벗고 형광등 불빛 아래 앉아 종자학과 작물생리학 서적과 씨름했다.
볍씨의 발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온탕 소독 온도와 침종 시간, 품종별 생육 특성을 연구하며 실험을 거듭했다.
주먹구구식 농사를 벗어나 흙과 종자를 과학적으로 다루려는 치열한 집념이었다.
마침내 셋째 아들은 국가 공인 종자기사 자격을 땄다.
이어 관청에 정식 종자업 등록까지 마쳤다.
종자의 선별과 소독, 육묘 관리까지 체계적인 영농의 기틀을 다져낸 이 결실은 훗날 우량 품종 계약재배와 친환경 영농조합으로 뻗어나갈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가업을 향한 형제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 대리점을 꾸리던 넷째 아들도 형들의 제안을 받고 정미소로 내려왔다.
넷째 아들은 도정과 가공 공정을 온전히 도맡았다.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을 하며 식당과 소비자들이 밥맛과 쌀의 품질에 얼마나 까다로운지 몸소 겪었던 터였다.
그는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과 뽀얀 미분(米粉) 속에서 한시도 눈과 손을 떼지 않았다.
도정기 롤러가 돌아갈 때 생기는 마찰열로 쌀알에 미세한 금이 가거나 수분을 잃지 않도록, 롤러의 간격과 풍량을 세심하게 조율했다.
갓 찧어져 쏟아져 나오는 쌀을 수시로 두 손 가득 받아내어 손끝의 감촉과 온도로 최적의 수분 상태를 살폈다.
이후 막내 아들도 힘을 보탰다.
막내 아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대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어냈다.
"아버지, 이제는 서울 소비자가 안방에서 인터넷으로 산지 쌀을 시켜 먹는 세상입니다."
막내 아들은 온라인 쇼핑몰에 쌀을 입점시켰다.
모니터 화면 너머로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직거래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쌀을 도시 소비자의 식탁으로 곧장 연결하는 새로운 판매망이었다.
판로는 화면 너머로도 뻗어나갔다.
막내 아들은 라이브 커머스 화면 앞에 서서 실시간으로 도시 소비자들과 마주했다.
갓 도정한 쌀의 품질과 차진 밥맛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도심의 젊은 단골 고객층을 빠르게 넓혀나갔다.
서울에서 열어젖힌 디지털 소통망이 독정리 쌀의 새로운 활로가 되었다.
이로써 온 가족의 분업 체계가 빈틈없이 들어맞았다.
여기에 농민의 땀방울과 도정 과정을 홈페이지 글로 진솔하게 전하며 직거래 신뢰를 다져낸 큰며느리의 따뜻한 손길까지 보태졌다.
정미소 마당 한복판에 다섯 형제가 나란히 섰다.
배병희는 장성한 아들들의 손을 하나씩 그러쥐었다.
기름때와 흙먼지가 깊게 박인 거친 손들이었다.
"혼자 가면 빠를지 몰라도, 함께 가야 멀리 가는 법이다.
형제가 단단히 뭉쳤으니 두려울 게 없다."
황혼이 깃드는 독정리 들판 위로 붉은 노을이 번져나갔다.
광활한 갯벌을 메워 일군 논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다섯 형제가 뭉치자 정미소는 거대한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0:00
8:04
10
10
1.0×
재생 속도
타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