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13화
장대비 속 볏가마 사수작전
내 논을 파는 한이 있어도
13화 장대비 속 볏가마 사수작전
1980년대 · 독정 정미소
새마을정미소 문을 다시 연 배병희는 그물부터 쳤다.
창고 틈새마다 그물을 둘러 참새가 낟알을 쪼아 먹지 못하게 막았다.
그다음 멈춰 선 기계를 하나씩 뜯어고쳤다.
헛돌던 베어링을 갈아 끼우고 풀리에 엉겨 붙은 기름때를 닦아 내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안면도 탈곡팀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 온 사람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조카들과 고향 동료들, 디젤 엔진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난 기관수가 힘을 보탰다.
배병희는 기관수에게 정미소의 심장인 발동기를 맡겼다.
크랭크 손잡이를 힘껏 돌려 50마력 조양 발동기에 시동을 걸면 묵직한 굉음이 울렸다.
매캐한 경유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거대한 쇠 회전축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맏아들도 정미소 일에 뛰어들었다.
방위병으로 복무하는 동안에도 남는 시간이면 정미소로 왔다.
농사와 방앗간 일을 함께 꾸리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간척지 논에 매달렸다.
추수를 마친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밤낮없이 벼를 찧었다.
벼를 다 찧은 뒤에도 쉴 틈은 없었다.
모내기를 준비하는 틈틈이 기계를 뜯어 닳은 부속을 깎고 갈아 끼웠다.
농사로 번 돈은 정미소 기계를 손보고 부품을 장만하는 데 들어갔다.
일손이 달리는 주말이나 방학이면 어린 자녀들도 나섰다.
쌀겨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제 몸집만 한 볏가마니와 쌀 포대를 날라 쌓았다.
정미소가 다시 돌아가고 약속한 날에 볏값을 꼬박꼬박 내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독정리는 물론 장안면 일대 농가들까지 벼를 싣고 찾아왔다.
훗날 정미소에 전기를 들인 뒤로는 곡식을 쌓아 둘 자리가 늘 모자랐다.
쏟아져 들어오는 벼를 다 들여놓을 창고가 없었다.
배병희는 하는 수 없이 정미소 옆 논을 빌렸다.
논바닥 위에 볏가마니를 수천 가마씩 높이 쌓고 두꺼운 천막과 비닐 방수포를 덮었다.
창고도 없이 들판에 벼를 쌓아 두니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다.
들쥐들이 가마니 밑을 갉아 벼가 쏟아지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비였다.
방수포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면 가마니 속에서 열이 나며 벼가 뜨고 썩었다.
곰팡이가 피거나 싹이 트면 농민들의 한 해 농사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추수철 내내 배병희는 밤하늘에 구름만 보여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흙 묻은 작업복에 장화도 벗지 못한 채 밤을 새웠다.
먹구름이 몰려와 한밤중에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하면, 그는 손전등을 집어 들고 캄캄한 야적장으로 달려갔다.
비바람에 방수포가 펄럭이며 날아가려 하면 미끄러운 볏가마 위로 기어올랐다.
비를 맞으며 모래주머니와 흙 포대를 눌러 얹고 굵은 밧줄로 방수포를 동여맸다.
논바닥에 차오른 흙탕물이 볏가마 밑으로 스미지 못하도록 삽으로 진흙을 퍼내 야적장 둘레에 물길을 텄다.
비가 잦아들 때까지 손전등을 비춰 가며 새는 곳은 없는지, 천막 귀퉁이가 젖지 않았는지 살폈다.
그렇게 밤새 볏가마 곁을 지켰다.
0:00
3:46
10
10
1.0×
재생 속도
타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