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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열두 자리 숫자
내 논을 파는 한이 있어도
3화 열두 자리 숫자
1950년대 · 안면도 중장리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외딴 섬마을 안면도도 전쟁을 비켜 가지 못했다.
집안의 기둥이던 두 형이 징집 영장을 받고 전선으로 떠났다.
막내 배병희는 열다섯 살이었다.
형들이 떠난 뒤로 늙은 부모와 누나들의 생계를 떠맡았다.
하루아침에 소년 가장이 되었다.
총소리는 바다 건너 먼 데서 났다.
굶주림은 바로 문 앞에 와 있었다.
초여름이 되자 들판에 보리가 누렇게 익었다.
탈곡기는커녕 소달구지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보리를 베어 들이고 터는 일은 오롯이 열다섯 소년의 몫이었다.
배병희는 이를 악물고 마당에 멍석을 폈다.
새벽이슬이 걷히기 무섭게 보릿단을 지게로 져 날랐다.
마당에 널어놓고 홀로 도리깨를 쥐었다.
뙤약볕 아래서 도리깨가 허공을 갈랐다.
타작 소리가 울릴 때마다 흙먼지와 보리 까끄라기가 흩날렸다.
땀에 젖은 목덜미와 등줄기로 까끄라기가 파고들었다.
살갗이 벌겋게 짓무르고 불에 덴 듯 쓰라렸다.
손바닥은 물집이 터지고 굳은살이 뜯겨 피와 진물이 배어 나왔다.
종일 도리깨 자루를 쥐었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굳어 잘 펴지지 않았다.
밤이면 온몸이 쑤셔 숟가락조차 들기 어려웠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가 도리깨를 놓으면 식구들의 끼니가 끊겼다.
홀로 휘두르고 홀로 쓸어 담는 보리타작은 한 달이나 이어졌다.
소년은 형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포화가 빗발친다는 소문이 섬마을까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형들의 전사 소식이라도 날아들까 두려웠다.
‘형님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형들이 입대하던 날, 바로 위 형은 막내의 손을 꼭 쥐고 자신의 군번을 일러 주었다.
열두 자리에 이르는 긴 숫자였다.
소년은 도리깨를 내리칠 때마다 그 열두 자리 숫자를 입속으로 외웠다.
밤이면 욱신거리는 손을 모아 쥐고 형들의 무사를 빌며 외우고 또 외웠다.
그 번호는 전쟁터 어딘가에 형이 살아 있다는 하나뿐인 징표였다.
예순 해, 일흔 해가 흐른 노년에도 그는 바로 위 형의 군번만큼은 또렷하게 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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